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구마사/논란 및 사건 사고/고증 오류 및 역사 왜곡 (문단 편집) === 복식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743a8652268df32634fae227e4571f51.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6bf3a9237db1db1899a36a07f7d37c6.jpg|width=100%]]}}} || ||<-2> {{{#fff 조선 초기 여성 한복의 올바른 고증}}}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3d_1616486768_235860.mp4_20210507_010733.808.jpg|width=100%]]}}}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3d_1616486768_235860.mp4_20210507_010650.276.jpg|width=100%]]}}} || ||<-2> {{{#fff 조선구마사 속 조선 초기 여성 한복}}} || 조선구마사에서 조선시대 여성들의 의복 고증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일부만 맞는 말이다. '''조선 초기'''의 여성 한복은 허리 아래까지 오는 넉넉한 장저고리로, 원명왕후와 궁녀들의 복식은 실제 조선 초기 한복의 양식이 잘 반영된 게 맞는다.[* 역시 조선 초기가 배경인 [[홍천기]]에서도 장저고리를 볼 수 있다. 몇몇 중국인들은 조선 초기 한복이 명나라 초기 의상을 훔쳤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109239866H|#]] 이는 [[고려양|중국 쪽에서 오히려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복#대중들의 편협한 인식|한복]] 문서에도 나와 있듯 한복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조선 후기에서 구한말 양식에만 머물러 있어 생긴 문제 제기로 보인다. 다만 그 밖의 주요 인물들이나 의주 근방 중국식 기생집 장면의 기생들이 조선 후기의 짧은 한복을 입고 있는 등 고증이 틀린 장면이 존재하는 것도 맞다. 소모성 장면은 고증이 정확하지 않은 듯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2d_1616558612_e_235861.mp4_20210507_020644.545.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bbsimg.sbs.co.kr/Img0404_20160310142346_7.jpg|width=100%]]}}} || || 조선구마사 || [[육룡이 나르샤]] || 또 [[곤룡포]]를 제외한 궁중 복장들이 18세기 이후~조선 후기의 디자인에 해당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일단 남성 신하들의 복장의 경우 SBS의 전작 [[육룡이 나르샤]]에서 사용한 궁중 의복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육룡이 나르샤는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삼은 조선 건국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그리고 남자 배우들의 경우 [[갓(모자)|갓]]을 쓴 인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주연급 인물들은 스타일을 고려해서인지 모자를 쓰지 않은 모습을 더 자주 보여주지만 액스트라나 단역들 중에서 갓을 쓴 인물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갓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흑립은 [[원 간섭기]]를 거쳐 유입되었지만, 갓의 조상격인 모자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흑립이 아니라면 발립이나 죽립, 정 아니면 [[문라건]]이라도 쓰고 다닐 수 있다.[* 전근대 [[한민족]]에게 모자는 필수품으로 죄인들이나 가난한 천민들은 맨상투로 다녔다. 밥먹는 것에서 옷 입는 것까지 법도를 엄격히 중시하던 조선에서 상류층이 갓을 쓰지 않고 다니는 것은 당시 입장에서는 상당히 상스러운 모습이다. 게다가 여자들은 [[가체]], 남성들은 갓과 갓끈이 사치품일 정도로 패션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다.] ||[[파일:23d_1616486768_235860.mp4_20210506_233005.455.jpg|width=100%]]|| || '강녕대군'을 호위하는 무사들이 쓴 갓. || ||[[파일:23d_1616486768_235860.mp4_20210506_233102.852.jpg|width=100%]]|| || 이방원의 부하들이 쓴 두 가지 형태의 갓. || ||||[[파일:23d_1616486768_235860.mp4_20210506_233144.627.jpg|width=100%]]|| || '양녕대군'을 맞는 중추부사 하원익 집안의 하인들이 쓴 갓. || 다만 작중에서 [[원경왕후|원명왕후]]가 입은 [[당의]]는 세부고증이 잘 되지 않은 예시 중 하나로 들 수 있다. 배경이 되는 [[이방원|태종]] 시기부터 병자호란 이전까지 [[왕비]]는 평상복으로서 장저고리, 배자를 입었으며, 그위에 단삼이나 장삼을 겹쳐 입었다. 그 외에도 원명왕후는 [[가체]] 없이 쪽머리에 첩지 하나만 올렸는데, 첩지가 생겨난 시기는 [[영조]], [[정조(조선)|정조]] 때 시행된 가체 금지령 이후이며, [[순조]] 때부터 가체를 대신한 쪽머리, [[족두리]]와 함께 장려된 것이었다. 또한 첩지 자체는 족두리를 고정하는 데 쓰이는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는 대부분의 한국 사극이 범하는 실수. 한편 [[무당]] 복식의 경우 고증오류가 '''비교적 심각한 편'''이다. 삼국시대 전후의 제사장은 창작의 여지가 있지만, 조선의 경우 남아 있는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듯 무속 의례에 동원된 기녀들이 오방색을 반영한 화려한 색상의 [[무복]]을 입었다. 그런데 본 드라마의 국무당 복식은 소복처럼 하얀데다 그 양식이 조선의 여성 한복과 괴리감이 심하고, [[천녀유혼]]이나 고장극 등의 [[중화권 사극]]에 등장하는 옷과 굉장히 유사하다.[[https://m.fmkorea.com/index.php?mid=humor&sort_index=pop&order_type=desc&document_srl=3475414215&listStyle=webzine|#]] 이에 국내에서는 역시 [[동북공정]]의 일환임을 주장하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중국에서는 한국이 자국 매체를 표절했다며 양국 드라마 속 인물의 모습을 비교한 이미지가 돌아다니기도 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25&aid=0003088226|#]][* 무복은 회화 자료, 유물 자료도 많으며 매체에서 등장하는 비율도 많아 어지간해선 실수하기 힘들다. 이 정도면 고의적으로 왜곡한 수준.] 다만 비교 대상으로 거론된 중국 작품들 역시 판타지물로, '''해당 복식이 실제 중국의 무복인 건 아니다.''' 애초에 한국·일본과 달리 중국에서는 [[도교]]가 무속의 역할을 포함하기 때문에 굿 등을 동반하는 무속 의례는 소수민족의 문화쯤으로 취급되었고, 이들의 무복도 전통 의상에 기반해 굉장히 화려하다. 궁중 무속이 존재한 [[청나라]] 시기의 무복을 보면 알 수 있다.[[https://namu.wiki/w/%ED%8C%8C%EC%9D%BC:%EC%B2%AD%EB%82%98%EB%9D%BC%20%EC%82%B4%EA%B5%90.jpg|#]] 즉 중국에서도 상기 스타일은 판타지고, 의복 양식이 유사한 삼국시대 전후라면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는 디자인으로 이 경우 [[한복#대중들의 편협한 인식|무턱대고 중화풍이라며 문제를 제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본작의 무복 역시 보편적인 여성 한복 양식이 아닐뿐 기반 자체는 엄연히 남성 한복의 일부인 [[철릭]]이고, 이를 실제로 무복으로 입기도 했기 때문에 양식 자체가 중국풍이라는 건 잘못된 지적이다.] 또 궁중 의례가 아닌 씻김굿 등의 지방 무속은 굿을 주관하는 무당을 비롯한 의식 참여자가 전부 하얀 옷을 입는 등 복식의 양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본작처럼 궁중 무속을 다루는 게 아니라면야 조선이라고 해서 무조건 화려하다고 단정짓는 것도 금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